초여름 스크랜톤 박사는 지독한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그때 아이까지 심하게 앓고 있어 남편을 돌볼 틈이 없었고 어머님이 그를 간호하였습니다. 남편이 회복된 후 우리는 차로 드라이브를 나갔습니다. 그때 남편은 내게 놀라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자신은 중앙 아프리카를 제외한 어느 곳이든 선교사로 나아가 자신을 헌신하기로 하였다고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시간이 흐른뒤, 나는'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저도 가겠어요'하였습니다. 또 한참 있은 후 '거기에 제 뼈를 묻겠어요'하였습니다. 나는 결혼 하던날 결심한 것 중의 하나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천병력 같은 일이었으나 그처럼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려는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이것은 한국 감리교 초기 선교사 스크랜톤의 부인이 진술한 내용이다. 이를 통해 보면 스크랜톤은 열병 중에 선교사로의 결심을 굳혔고, 그 부인은 남편의 거룩한 이상에 순종한 것으로 보인다.